최근 르라보, 딥디크와 같은 니치 향수 브랜드의 향 노트를 살펴보다 보면 'Iso E Super'라는 단어를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조향사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향수의 재료지만,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 이 향료.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현대 향수의 필수 요소가 되었을까요?
탄생: 제비꽃을 쫓다 발견한 우연
1960년대, 전 세계 과학자들은 아로마 화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제비꽃(Violet) 향기를 결정짓는 '이오논(Ionone)'과 유사한 구조의 화합물을 연구하던 중, 우연히 이소 이 수퍼(Iso E Super)라는 물질이 탄생했습니다.
이것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이 아닌, 인간이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100% 합성 향료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우디(Woody) 향을 내는 보조제로 사용되었으나, 곧 그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Iso E Super는 어떤 향이 날까요?
Iso E Super는 강렬하게 코를 찌르는 향이 아닙니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며, 단일 향료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향기를 냅니다.
- 투명한 우디(Transparent Woody): 울창한 삼나무 숲의 향기가 나지만, 천연 나무 특유의 무겁거나 텁텁한 느낌이 없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맑고 투명한 나무 향입니다.
- 앰버 & 머스크 뉘앙스: 기분 좋은 머스크와 용연향(Ambergris)의 포근함이 깔려 있어, 피부 본연의 살냄새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 벨벳 텍스처(Velvet Texture): 향기를 맡았을 때 '부드럽다'는 촉감이 연상되는 벨벳 같은 질감을 가지고 있어, 향수의 전체적인 인상을 고급스럽게 만듭니다.
향수 역사를 바꾼 순간들
Iso E Super가 처음 향수에 사용된 것은 1975년 출시된 'Halston Woman'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주 소량만 사용되었죠. 하지만 이 향료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88년 출시된 크리스챤 디올의 'Fahrenheit(파렌하이트)'입니다.
이 향수는 전체 용량의 약 25%를 Iso E Super로 채우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고,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조향사가 Iso E Super의 '부스터(Booster)' 효과—다른 향료를 더욱 풍성하고 확산력 있게 만들어주는 능력—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Did you know? 재미있는 사실
향료 하나만 담은 향수, Molecule 01
에센트릭 몰리큘스(Escentric Molecules)의 'Molecule 01'은 오직 Iso E Super 100%와 알코올만으로 만들어진 향수입니다.
뿌린 사람은 향을 잘 못 느끼지만, 주변 사람들은 "당신에게서 너무 좋은 냄새가 난다"며 반응하는 '페로몬 향수' 같은 현상을 만들어내며 이 향료의 신비로움을 증명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감
피부와 하나 되는 마법
볼름에릭스는 Iso E Super를 '보이지 않는 옷'이라고 해석합니다.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사용자의 체취와 섞여 그 사람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완성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향료를 사용하여 인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스치듯 지나갈 때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살냄새'의 미학을 구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