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 Hero, But a Villain.
누군가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건
언제나 ‘완벽함’이 아니라 ‘잔상’입니다.”
솔직히 말해봅시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난 뒤, 집에 가는 길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캐릭터는 누구였나요? 세상을 구하느라 바쁜, 티 없이 맑고 올바른 주인공이었나요? 아니면 어딘가 결핍되어 보이지만, 자기만의 철학으로 무장한 채 서늘한 눈빛을 보내던 빌런이었나요? 누군가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건 언제나 ‘완벽함’이 아니라 뇌리에 박히는 ‘잔상’입니다.
향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백화점 1층을 가득 채우는 흔하디흔한 시트러스, 누구나 “좋네”라고 말하고 3초 뒤에 잊어버리는 그런 향기들. 지루하지 않으신가요? 오늘은 당신을 ‘좋은 사람’이 아니라, ‘알고 싶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향, 볼름에릭스의 빌런 향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이건 단순한 리뷰가 아닙니다. 당신의 이미지를 재설계하는 과정입니다.
선하지 않아도 잊히지 않는 남자 니치 향수, 빌런의 미학
– 빌런 향수의 이미지와 컨셉 (Concept)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좋은 향’을 찾습니다. 비누 냄새, 갓 세탁한 셔츠 냄새 같은 것들 말이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그런 향기를 맡았을 때 당신은 그 사람에게서 어떤 호기심을 느끼나요? “아, 깔끔한 사람이구나”가 전부일 겁니다. 하지만 빌런 향수는 다릅니다. 이 향은 친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가오지 말라는 듯한 경고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거리감 때문에 사람들은 더 가까이 다가오고 싶어 합니다.
좋은 사람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사람이 더 오래 기억에 남듯, 향도 그 궤를 같이합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사람들이 남겨진 향기를 응시하게 만드는 힘. 볼름에릭스의 빌런 향수는 선하지 않아도, 부드럽지 않아도, 누구보다 선명하게 각인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빌런’이라는 키워드에 열광하는 이유이자, 이 향수가 가진 힘의 원천입니다.
첫 향의 충격: 날카로운 얼음 서리의 긴장감
– 빌런 탑 노트(Top Note)의 Ice Frost와 카다멈
처음 펌핑을 하는 순간, 코끝을 찌르는 건 익숙한 알코올 향이 아닙니다. 마치 새벽 4시의 차가운 공기를 그대로 응축한 듯한 얼음 서리(Ice Frost)의 냉기입니다. 여기에 톡 쏘는 카다멈(Cardamom)이 더해져 수술실의 메스나 차갑게 식은 권총의 총구를 연상시키는 긴장감을 줍니다.
선과 악의 경계, 빌런의 첫인상은 철저히 ‘차가움’으로 시작됩니다. 이 서늘한 긴장감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당신을 쉽게 대할 수 없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되어줍니다. 비즈니스 미팅이나 중요한 협상 자리에서 이 향수가 의외로 효과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차가운 이성 뒤에 숨겨진 뜨거운 본능
– 미들 노트와 베이스 노트, 튜베로즈와 샌달우드
하지만 빌런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저 차갑기만 해서가 아닙니다. 그 냉철함 뒤에 숨겨진, 아무도 모르는 뜨거운 집착이나 사연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캐릭터에 빠져듭니다. 향의 전개도 이 서사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차가운 서리 향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면, 그 뒤에는 놀랍도록 관능적인 튜베로즈(Tuberose)와 메탈릭 어코드(Metal Accord)가 충돌하며 피어오릅니다.
차가운 금속성과 거친 튜베로즈의 조화, 그리고 이를 감싸는 쥬니퍼 베리의 쌉싸름함. 겉으로는 냉정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는 ‘나쁜 남자’의 클리셰를 향기로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는 샌달우드와 머스크의 잔향은 차가움 때문에 경계했던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반전의 매력을 선사합니다.
TOP NOTE
Ice Frost, Myrtle, Cardamom
얼음 서리의 냉기, 머틀의 허브향, 카다멈의 스파이시함이 주는 긴장감
MIDDLE NOTE
Metal, Tuberose, Juniper Berry
날카로운 금속성, 관능적인 튜베로즈, 쥬니퍼 베리의 조화
BASE NOTE
Sandalwood, Musk
차가운 이성 뒤에 남는 부드러운 샌달우드와 머스크의 잔향
느와르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
– 빌런의 무드(Mood)와 스타일링
이 향수를 뿌리는 것은 마치 흑백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의식과도 같습니다. 흐린 날씨, 비에 젖은 아스팔트, 그리고 트렌치코트.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을 뚝 떼어다 놓은 듯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밝고 화창한 날보다는, 비가 오거나 흐린 날, 혹은 해가 진 저녁에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특히 수트(Suit)를 즐겨 입으시는 분들에게는 필수적인 아이템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넥타이를 매고 마지막으로 이 향수를 손목에 입히는 순간, 당신은 단순히 출근하는 회사원이 아니라, 도시라는 정글을 항해하는 주체가 됩니다. 주변의 공기마저 바꿔버리는 힘, 그것이 바로 빌런이 가진 ‘분위기’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어떤 향으로 기억되길 원합니까?
오늘 밤, 평범함을 벗어던지고 위험한 매력을 입어보세요.